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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블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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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시카고 블리츠는 1983년부터 1984년까지 활동했던 USFL(United States Football League)의 미식축구팀이다. 1983년 조지 앨런 감독 하에 센트럴 디비전 공동 우승을 차지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다. 이후 구단주 테드 디트리히가 애리조나 랭글러스와의 프랜차이즈 교환을 통해 팀을 매각하면서 1984년에는 마브 레비 감독을 영입했으나, 재정 문제와 선수 부족으로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결국 팀은 해산되었고, USFL은 1985년 시즌을 건너뛴 후 NFL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패소하며 운영을 중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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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블리츠 - [스포츠팀]에 관한 문서
팀 정보
이름시카고 블리츠
로고
창단1982년
해체1984년
연고지솔저 필드 ( 일리노이주 시카고)
상징색빨강, 파랑, 은색, 하양
리그미국 풋볼 리그 (1983년~1985년)
콘퍼런스서부 콘퍼런스 (1984년)
디비전센트럴 디비전 (1983년~1984년)
역사시카고 블리츠 (1983년~1984년)
홈구장솔저 필드 (1983년~1984년)
구단 정보
구단주1983년: 테드 디에트리히 박사
1984년: 제임스 호프만 박사
1984년: 미국 풋볼 리그
단장브루스 앨런 (1983년)
코칭 스태프
감독1983년: 조지 앨런 (12승 7패)
1984년: 마브 레비 (5승 13패)
우승 기록
리그 우승0회
콘퍼런스 우승0회
디비전 우승0회
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 진출0회

2. 팀 역사

블리츠는 USFL의 12개 창립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다. 원래 시카고 연고 구단주는 시카고에서 성장한 오클라호마의 석유 재벌 J. 월터 던컨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그 창립자인 데이비드 딕슨은 도널드 트럼프가 철수한 후 던컨에게 뉴저지 제너럴스의 소유권을 맡도록 설득했다.[1]

던컨이 철수하면서, NFL의 전설적인 코치 조지 앨런과 남부 캘리포니아 개발업자 윌라드 버논 해리스 주니어가 공석이 된 시카고 프랜차이즈를 신청했다. 자본을 찾던 그들은 피닉스에 프랜차이즈를 갖는 것에 관심을 보였던 심장 외과 의사 테드 디에트리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앨런과 디에트리히는 1970년대부터 친구였다.[1] 디에트리히는 지분 통제를 대가로 앨런과 해리스 그룹에 합류하여, 회장, 해리스는 부회장, 앨런은 이사회 의장 겸 수석 코치를 맡았다.

2. 1. 창단 배경 (1982년)

블리츠는 USFL의 12개 창립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다. 원래 구단주는 시카고에서 성장한 오클라호마의 석유 재벌인 J. 월터 던컨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리그 창립자인 데이비드 딕슨은 원래 구단주인 도널드 트럼프가 철수한 후 던컨에게 뉴저지 제너럴스가 된 뉴욕시 프랜차이즈의 소유권을 맡도록 설득했다.[1]

던컨이 철수하면서, 전설적인 NFL 코치 조지 앨런과 남부 캘리포니아 개발업자 윌라드 버논 해리스 주니어가 공석이 된 시카고 프랜차이즈를 신청했다. 자본을 찾던 그들은, 원래 자신의 고향인 피닉스에 프랜차이즈를 갖는 것에 관심을 보였던 유명한 심장 외과 의사 테드 디에트리히에게로 향했다. 앨런과 디에트리히는 디에트리히가 앨런의 워싱턴 레드스킨스에서 심장병에 대한 강연을 했던 1970년대부터 친구였다.[1] 그러나 그는 지분 통제를 대가로 앨런과 해리스 그룹에 합류하는 데 동의했다. 디에트리히는 회장, 해리스는 부회장, 앨런은 이사회 의장 겸 수석 코치를 맡았다.

2. 2. 조지 앨런 감독 시대 (1983년)

블리츠는 USFL의 12개 창립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다. 원래 구단주는 시카고 출신 오클라호마의 석유 재벌인 J. 월터 던컨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리그 창립자인 데이비드 딕슨은 도널드 트럼프가 철수한 후 던컨에게 뉴저지 제너럴스의 소유권을 맡도록 설득했다.[1]

던컨이 철수하면서, 전 NFL 코치 조지 앨런과 윌라드 버논 해리스 주니어가 시카고 프랜차이즈를 신청했다. 이들은 자본을 찾기 위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프랜차이즈를 갖는 것에 관심을 보였던 심장 외과 의사 테드 디에트리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디에트리히는 지분 통제를 대가로 앨런과 해리스 그룹에 합류했다.[1] 디에트리히는 회장, 해리스는 부회장, 앨런은 이사회 의장 겸 수석 코치를 맡았다.

앨런은 1977년 이후 코칭에서 물러났었다. 1년 전 시카고 베어스의 헤드 코치 자리에 지원했었지만, 베어스 구단주 조지 할라스는 앨런이 로스앤젤레스 램스로 이적한 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앨런은 라이벌 베어스를 이길 기회를 즐겼다.[1] 그는 즉시 새로운 팀의 "얼굴"이 되었고, NFL 베테랑 선수들로 가득 찬 팀을 구성하여 리그 초대 챔피언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받았다.

블리츠는 미시간 팬서스와 함께 센트럴 디비전 공동 우승을 차지했지만, 팬서스가 정규 시즌에서 블리츠를 스윕하면서 디비전 우승을 차지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블리츠는 필라델피아 스타스를 상대로 21점 차 리드를 날려버리고 연장전에서 44-38로 패했다.

2. 2. 1. 관중 동원 부진과 디에트리히의 구단 매각

블리츠는 USFL의 12개 창립 프랜차이즈 중 하나였다.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팀 중 하나였지만, 관중 동원에는 어려움을 겪었다. 평균 관중은 18,100명으로, 솔저 필드의 넓은 공간에서는 더욱 적게 느껴졌다.[1]

테드 디에트리히는 1983년에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았다. 그는 USFL이 자리를 잡기까지 수년간 손실이 발생할 것을 예상했지만, 애리조나 심장 연구소 설립자로서 피닉스와 시카고를 오가는 것에 지치게 되었다. 그는 일주일에 사흘을 시카고나 블리츠 경기 장소에서 보내는 것이 심장 연구를 지속하기 어렵게 만들었고, 장기적으로는 부재하는 구단주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1]

애리조나 랭글러스의 구단주 짐 조셉도 많은 손실을 보고 랭글러스를 매각하려 했다. 디에트리히는 조지 앨런과 그의 NFL 베테랑 선수단을 데려올 수 있다면 애리조나에서 인수할 의향이 있었고, 조셉은 이에 동의했다. 이후 디에트리히는 밀워키의 심장 외과 의사 제임스 호프만에게 블리츠를 매각할 사람을 찾았다.[1]

1983년 9월 20일, 디에트리히는 블리츠를 호프만에게 720만달러에 매각하고 조셉에게서 랭글러스를 매입했다. 호프만과 디에트리히는 앨런, 블리츠 코칭 스태프, 선수단 대부분이 피닉스로 이동하고, 랭글러스 선수단 대부분이 시카고로 이동하는 자산 교환을 진행했다. 1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소속을 변경했다.[1]

디에트리히는 블리츠의 이름을 애리조나로 가져가고 싶어했지만, 호프만은 이름을 시카고에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앨런은 블리츠 본부인 데스 플레인스, 일리노이의 가치 있는 물품들을 피닉스로 보냈고, 블리츠 로고나 팀 이름이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버렸다.[2] 앨런은 시카고에 보관해야 할 약 10만달러 상당의 장비도 보냈지만, 디에트리히는 반환을 약속했다.[1]

이 거래는 랭글러스를 강팀으로, 블리츠를 약팀으로 만들었다. 호프만은 값비싼 선수 계약을 유지해야 했다면 팀 인수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거래는 USFL, 특히 시카고에서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 3. 애리조나 랭글러스와의 프랜차이즈 교환 (1983년)

1983년, 애리조나 랭글러스의 구단주 짐 조셉은 많은 돈을 잃고 랭글러스를 매각하려 했다. 블리츠의 구단주 테드 디에트리히는 조지 앨런과 그의 NFL 베테랑 선수단을 데려올 수 있다면 애리조나에서 팀을 인수할 의향이 있었다. 조셉은 즉시 동의했다. 그 후 디에트리히는 밀워키에 본사를 둔 심장 외과 의사 제임스 호프만에게 블리츠를 팔았다.[1]

이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특이한 거래 중 하나로 이어졌다. 1983년 9월 20일, 디에트리히는 블리츠를 호프만에게 720만달러에 매각한 후 조셉으로부터 랭글러스를 매입했다. 호프만과 디에트리히는 앨런, 블리츠 코칭 스태프, 블리츠 선수단의 대부분이 피닉스로 이동하고, 랭글러스 로스터의 대부분이 시카고로 이동하는 자산 교환을 진행했다. 총 100명 이상의 선수들이 소속을 변경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예외는 랭글러스 쿼터백 앨런 리셔가 그렉 랜드리를 백업하기 위해 애리조나에 남았다는 것이다.[1]

디트리히는 처음에는 블리츠의 이름을 가지고 애리조나로 가고 싶어했지만, 호프만은 블리츠의 이름을 시카고에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것은 거의 남지 않았다. 거래가 성사되자마자 앨런은 블리츠 본부인 데스 플레인스, 일리노이의 가치 있는 모든 것을 피닉스로 보냈는데, 여기에는 타자기와 거울도 포함되었다. 블리츠 로고나 팀 이름이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쓰레기통에 버려졌다.[2] 앨런은 또한 구매의 일부로 시카고에 보관해야 할 약 10만달러 상당의 장비를 보냈지만, 디트리히는 반환할 것을 약속했다.[1]

이 거래는 랭글러스를 하위권 팀에서 하룻밤 사이에 강팀으로, 블리츠를 리그 3위 팀에서 4승 14패로 리그 최악의 기록과 동률을 이룬 팀의 하위 버전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호프만은 값비싼 선수 계약을 유지해야 했다면 팀 인수를 고려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거래는 USFL의 신뢰성, 특히 시카고에서 심각한 의문을 제기했다.[1]

USFL은 1983년1984년 랭글러스를 거의 모든 선수가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프랜차이즈로 간주했다.[1]

2. 4. 제임스 호프만 구단주 시대 (1984년)

1983년, 시카고 블리츠는 애리조나 랭글러스와 선수단을 맞바꾸는 특이한 거래를 단행했다. 이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특이한 거래 중 하나로 기록된다. 1983년 9월 20일 블리츠의 구단주 테드 디에트리히는 블리츠를 밀워키의 심장 외과 의사 제임스 호프만에게 720만달러에 매각한 후, 랭글러스의 구단주 짐 조셉으로부터 랭글러스를 매입했다.[1]

호프만과 디에트리히는 조지 앨런 감독, 블리츠 코칭 스태프, 선수단 대부분을 피닉스로 보내고, 랭글러스 선수단 대부분을 시카고로 데려오는 자산 교환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100명이 넘는 선수들이 팀을 옮겼다. 다만, 랭글러스의 쿼터백 앨런 리셔는 그렉 랜드리의 백업으로 애리조나에 남았다.[1]

디에트리히는 블리츠의 팀명을 애리조나로 가져가려 했지만, 호프만은 팀명을 시카고에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래 직후 앨런은 블리츠 본부가 있던 데스 플레인스, 일리노이의 가치 있는 물건들을 피닉스로 보냈고, 블리츠 로고나 팀명이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버려졌다.[2]

이 거래로 랭글러스는 약체 팀에서 강팀으로 급부상한 반면, 블리츠는 리그 최하위권 팀으로 전락했다. 호프만은 값비싼 선수 계약을 유지해야 했다면 팀 인수를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 거래는 USFL, 특히 시카고에서 리그의 신뢰성에 큰 의문을 제기했다.[1] USFL은 1983년과 1984년 랭글러스를 선수 구성이 거의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프랜차이즈로 간주했다.

호프만은 새로운 블리츠를 홍보하기 위해 NFL 베테랑이자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며 시카고 출신인 마브 레비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또한, 시카고 베어스의 백업 쿼터백 빈스 에반스를 영입하여 4년간 500만달러의 계약을 체결했다.[1] 1984년 1월, 블리츠는 베어스의 스타 러닝백 월터 페이턴에게 3년간 연간 200만달러라는 파격적인 계약을 제시했지만, 재정적인 문제로 인해 제안을 철회했다.[1]

호프만은 블리츠를 적극적으로 마케팅하고 광고했지만, 팀의 전력 약화와 스타 선수 부재로 인해 관중 동원에 실패했다. 팬들은 호프만이 NFL 수준의 팀을 버리고 2류 팀을 선택한 것에 불만을 품었다.[1]

USFL은 잠재적 구단주들에게 상세한 실사와 엄격한 자본 요건을 요구했지만, 호프만의 블리츠 인수 과정에서 이러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시카고에서 확실한 구단주를 확보하려는 조급함에 호프만의 재정 상태를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 호프만은 계약금으로 50만달러만 지불하고, 나머지 금액은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2] 그는 프로 풋볼 팀 운영 비용을 과소평가했고, 소수 투자자를 찾으려 했지만 실패했다. 여러 청구서를 제때 지불하지 못했고, 두 번째 프리시즌 경기가 끝난 후 갑작스럽게 팀을 떠났다.[1][2]

2. 4. 1. 1984 시즌 부진과 리그 운영 중단

1984년, 시카고 블리츠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부진한 시즌을 보냈고, 결국 리그 운영 중단으로 이어졌다. 1983년 시즌 후, 블리츠는 애리조나 랭글러스와 선수단을 맞바꾸는 특이한 거래를 했다. 이 거래로 블리츠는 전력의 핵심이었던 조지 앨런 감독과 선수단 대부분을 잃었다.[1]

블리츠는 1983년 애리조나 랭글러스 선수들을 주축으로 팀을 재편했지만, 두 가지 문제점에 직면했다. 첫째, 확장 드래프트로 인해 6개의 신생팀에 선수들을 내주어야 했다. 둘째, 1983년 리그 6위 패서였던 앨런 리셔를 대체할 쿼터백을 찾지 못했다.[1]

새로운 쿼터백 더그 에반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보였다. 그는 48.7%의 낮은 패스 성공률과 14개의 터치다운, 22개의 인터셉션을 기록하며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주전 러닝백 래리 캐나다는 915야드 러싱과 7개의 터치다운으로 분전했고, 와이드 리시버 마커스 앤더슨은 50개의 리셉션으로 940야드, 5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펀터 제프 고셋은 42.5야드의 평균 기록으로 리그 최고 수준의 활약을 펼쳤다.

블리츠는 시즌 초반 5경기에서 모두 패했지만, 그 중 3경기는 경기 막판 필드 골이나 연장전 접전 끝에 패했다. 이후 워싱턴과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연승을 거두었지만, 결국 4승 14패로 리그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1983년 랭글러스 수비는 리그 최악인 442점을 허용했고, 1984년 블리츠 수비 역시 466점을 내주며 리그에서 두 번째로 부진했다.

경기 외적으로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리그는 시즌 동안 팀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만 지원했고, 프런트 오피스 직원 해고로 홍보 활동에 차질이 생겼다. 블리츠는 경기당 평균 7,500명의 관중을 동원하는 데 그쳐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낮은 평균 관중 수를 기록했다.[3]

결국 시즌 종료 4경기를 남겨두고 블리츠는 해산을 발표했다. 동시에 USFL은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소수 지분 소유주인 에디 아이언혼에게 새로운 시카고 프랜차이즈를 수여했다.[3] 아이언혼은 1986년 USFL이 가을 시즌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지하며, 새로운 TV 계약을 체결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다른 팀과 합병하고 확장 드래프트에서 선수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에만 1985년 봄 시즌에 팀을 출전시키려 했으나, 리그가 동의하지 않아 1985년 시즌을 건너뛰었다. 결국 USFL이 NFL과의 반독점 소송에서 패소하며 운영을 중단하면서 모든 계획은 무산되었다.[1]

3. 경기장

경기장사용기간수용인원장소
솔저 필드1982년~1984년61,500명일리노이주 시카고


4. 선수

블리츠는 1983년과 1984년, 두 시즌 동안 선수 구성에 변화가 있었다. 1983년에는 오클라호마의 석유 재벌 J. 월터 던컨이 구단주가 될 예정이었으나, 데이비드 딕슨의 설득으로 뉴저지 제너럴스의 구단주가 되면서, 조지 앨런과 남부 캘리포니아 개발업자 윌라드 버논 해리스 주니어가 시카고 프랜차이즈를 신청했다. 이들은 심장 외과 의사 테드 디에트리히의 투자를 받아 팀을 창단했다.[1]

1984년 블리츠는 1983년 랭글러스와 동일한 선수들을 많이 보유했지만, 확장 드래프트와 선수들의 기량 문제로 더 약한 팀이 되었다. 특히, 쿼터백 빈스 에반스는 잦은 턴오버와 낮은 패스 성공률로 어려움을 겪었다. 주전 HB 래리 캐나다는 915야드 러싱과 7개의 터치다운, 48개의 리셉션을 기록하며 훌륭한 활약을 펼쳤고, WR 마커스 앤더슨은 50개의 리셉션으로 940야드, 5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하며 팀을 이끌었다. 올프로 펀터 제프 고셋은 42.5야드의 평균 기록으로 USFL을 이끌었다.

1983년과 1984년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다.

1983년 시카고 블리츠 로스터
포지션선수
쿼터백팀 코겔, 그렉 랜드리, 톰 포라스, 톰 로잔츠, 바비 스콧
러닝백맥 보트너(FB), 프랭크 콜린스, 월트 이즐리(FB), 케빈 롱(FB), 월터 풀, 팀 스펜서, 짐 스톤
와이드 리시버마커스 앤더슨, 와몬 버그스, 래리 더글러스, 트루메인 존슨, 레니 윌리스
타이트 엔드더그 코즌, 폴 리커, 팀 라이트먼
공격 라인맨로버트 반스(G), 브루스 브랜치(G), 닉 에어(T), 팀 제임스(C/LS), 잭 래퍼티(C/LS), 짐 로만(T), 제임스 루니, 빌 맥클렁(G), 밥 뉴턴(G), 팀 노먼(G), 월리 페수트(C), 톰 피에트(C), 마크 스티븐스턴(G), 롭 테일러(T), 톰 세이어(G), 스티브 토빈(C/LS), 카리 일리-렌코(T)
수비 라인맨주니어 아유(DE), 마크 부벤(DE), 밥 콥(DE), 조 어만(DT), 켄 길렌(DE), 키트 래스롭(DT), 존 리(DE), 칼 로치(DE), 트로이 토머스(DT)
라인배커팀 달링, 짐 판호스트, 조 페더스필, 도크 필드, 브루스 기즐링, 앤드루 멜론트리, 에드 스미스, 스탠 화이트
수비수칼 앨런(FS), 루터 브래들리(FS), 에디 브라운(SS), 더그 데니슨(CB), 버지르 리버스(CB), 프랭크 미니필드(CB), 돈 슈워츠(SS), 팻 슈미트(SS), 랜스 실즈(CB), 모리스 타일러(CB)
스페셜 팀프랭크 코랄(K/P), 프랭크 가르시아(P), 존 로베토(K)



1984년 시카고 블리츠 로스터
포지션선수
쿼터백빈스 에반스, 데니스 쇼, 팀 코겔, 론 리브스
러닝백바가스 퍼거슨, 게리 워시, 글렌 포드, 래리 캐나다, 짐 스톤(FB), 터델 미들턴
와이드 리시버마커스 앤더슨, 대릴 스토크스, 빅 제임스, 키스 메이지, 댄 풀턴, T.K. 엘레브라흐트, 게리 루이스, 올리버 윌리엄스, 프랭크 맥클레인, 재키 플라워스, 숀 포츠, 크리스 헤인즈
타이트 엔드브라이언 글래스고, 마크 킬
공격 라인맨마크 피셔(C), 마이크 웨스턴(C), 페리 하트넷(G), 빈스 스트로스(T), 글렌 하이드(G), 로드 월터스(G), 밥 시몬스(G), 더그 호폭(T), 댄 지게츠(T), 제리 도어거(T)
수비 라인맨레이 캐티지(DE), 커티스 번치(DE), 말콤 테일러(DT), 켄 타임스(DE), 마이크 모건(DT), 브루스 손튼(DE), 밥 클래스비(DE), 크리스 린드스트롬(DE), 데니스 푸하(DT)
라인배커로빈 피셔, 러스 워싱턴, 지미 리베라, 제프 가브리엘슨(OLB), 존 길렌(MLB), 톰 킬케니, 샘 노리스, 댄 루트, 클린턴 헤인즈, 그렉 윌리엄스, 가이 러프, 존 키멜, 밥 냅턴, 제임스 루니, 켄 켈리(OLB), 앤디 칸나비노
수비 백칼턴 피플스(CB), 로니 해리스(CB), 트렌트 브라이언트(CB), 도넬 다니엘(SS), 버지르 리버스(CB), 토미 윌콕스(SS), 마이크 폭스(FS), 존 아르노(FS), 로이 엡스(FS), 더그 플랭크(SS), 찰스 암스테드(CB), 커크 윌슨(CB), 케리 베어드(FS)
스페셜 팀케빈 세이벨(K), 제프 고셋(P), 데이비드 휘트(P)


4. 1. 주요 선수

블리츠에는 내셔널 풋볼 리그(NFL)에서 뛰었거나 뛰게 될 많은 선수들이 있었다. 주요 선수로는 빈스 에반스, 팀 스펜서, 트루메인 존슨, 그레그 랜드리, 제프 고셋, 바가스 퍼거슨, 리처드 홀랜드, 조 에르만, 팀 라이트먼, 래리 캐나다, 톰 세이어, 프랭크 미니필드, 짐 판호스트, 마크 메이, 브라이언 글래스고, 월터 이즐리, 루터 브래들리, 트로이 토마스, 로버트 콥, 에드 스미스, 스탠 화이트, 에디 브라운, 케빈 롱, 마크 킬이 있다.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코치 중 두 명(조지 앨런(1983), 마브 레비(1984))이 USFL에서 블리츠를 코칭했다.

다음은 주요 선수들의 기록이다.

기록선수연도
러싱 야드팀 스펜서1983
리시빙 야드트루메인 존슨1983
패싱 야드빈스 에반스1984


4. 2. 명예의 전당 헌액 코치

프로 풋볼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코치 중 USFL에서 코칭을 한 두 명은 모두 시카고 블리츠에서 코칭했다. 조지 앨런(1983년)과 마브 레비(1984년)이다.

5. 시즌별 성적

시즌순위플레이오프 결과
19831260중부 지구 2위지구전 패배 (필라델피아 스타스)
19845130서부 컨퍼런스 중부 지구 5위-
합계17200(플레이오프 포함)


참조

[1] 서적 The United States Football League, 1982-1986 McFarland & Company 2017
[2] 서적 Football For A Buck: The Crazy Rise and Crazier Demise of the USFL Houghton Mifflin Harcourt 2018
[3] 웹사이트 Einhorn Heads U.S.F.L. Team https://www.nytimes.[...] 1984-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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